“세계경제 침체하는데 미국만 청신호인 까닭은…”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년여 동안 ‘아베노믹스’의 효과로 잠깐 ‘반짝’ 한 후 다시 경기 침체 우려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유로존은 삼중 경기후퇴(Triple Dip) 위기에 직면했다. 메르켈 총리의 긴축 정책 후유증으로 독일 경제 역시 공식적인 침체 위험에 처했다.

지난 20여 년간 8~10% 선의 ‘성장 기적’을 자랑해온 중국 경제 역시 급격한 둔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구의 경제 제재 그리고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 경제도 위기다. 지난 7월 배럴당 115달러에서 12월 현재 70달러 이하로 급락한 유가로 인해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도 재정 파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 경제는 지금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이 같은 불안과 우려에서 멀리 빗겨나 있는 유일한 경제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 경제는 예상 밖의 호황과 탄력성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2일, 오피니언 란을 통해 미국 경제를 세계 경제의 “외로운 기관차(Lonely Locomotive)”라며 극찬했다. 세계 경제의 이런 시기에 우리나라의 경제도 ‘밑바닥 경제’에 빠질 위험이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이뤄졌다. 아래는 박영철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폴 크루그먼 “세계 경제, 밑바닥으로 가고 있다”

국내총생산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2010-2025 5년 단위로 살펴본 각 지역경제
http://www.conference-board.org/data/globaloutlook/index.cfm?id=27451
▲ 국내총생산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2010-2025 5년 단위로 살펴본 각 지역경제
ⓒ 전희경

– 최근 선진국들이 다시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각종 경제 지표가 보입니다. 세계 경제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에 대한 단·장기 전망이 궁급합니다.
“선진국들의 경제가 1~2년 안에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분명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계 총 GDP의 75% 이상을 생산하는 독일을 포함한 유로지역, 중국을 포함한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미국, 일본 등의 단기 경기 동향과 중장기 경제 전망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난 11월 셋째 주에는 일본·중국·독일·프랑스·러시아 등 주요 경제 국가의 단기 경기 동향에 관한 비관적인 수치가 발표됐습니다. 11월 마지막 주에는 비엔나에 모인 OPEC 장관들이 급락하는 석유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감산을 부결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계가 우려하는 침체 위기의 근본적 요인을 알고 싶습니다.
“주요 국가들의 단기 경기 동향 분석이 심각한 침체를 예고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2분기와 3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연율기준)은 각각 4.6%, 3.9%입니다. 2015년 예상성장률이나 전년 대비 미국만 ‘나홀로 순항’ 중입니다. 중국이 1.5~2%대이고, 독일과 한국도 1%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과 중국 등 몇 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의 경제가 ‘밑바닥 경제’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2015년 3.5%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경제가 2.7%의 높은 성장률의 미국 경제에 크게 의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 경제의 예상 밖 호황은 특출한 정부 경제 정책의 효과가 아닙니다. 실업률 하락으로 인한 개인 소비 심리의 회복, 자동차산업을 위시한 제조업의 부활, 특히 지난 5년간 급증하고 있는 세일 가스와 오일 생산 등의 복합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케인즈 학파에 속하는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서 ‘세계 경제가 밑바닥에서 기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소위 주류 경제학자들을 비판했습니다. 밑바닥 경제에서는 일반 경제 정책의 법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주류 경제학자들이 권장하는 긴축 정책이 세계 경제 침체의 주범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아베노믹스의 실패… 소비 위축으로 내수 경제 치명타

국가별 국내총생산 증가율 자료 : www.tradingeconomics.com. 2014.11.29.
주 : 2014년 4분기와 2015년 1분기는 추정치
▲ 국가별 국내총생산 증가율 자료 : www.tradingeconomics.com. 2014.11.29. 주 : 2014년 4분기와 2015년 1분기는 추정치

– 우선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본의 ‘공식적 침체’ 선언부터 설명해 주십시오.
“지난 11월 18일,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가 ‘공식적 침체’에 빠졌다고 선언했습니다. ‘공식적인 침체’란 한 나라의 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우를 뜻합니다. 일본의 2분기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다시 지난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일본 경제의 불확실성이 세계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일본의 2014년 2·3분기 성장률이 저조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결정적인 요인은 지난 4월에 야심차게 시행한 소비세 1차 인상의 후유증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소비 심리의 위축과 과분한 엔화 하락으로 인해 무역수지 흑자가 축소됐습니다. 일본 경제는 2분기 때 소비와 투자가 엄청난 부진을 기록했습니다.

소비심리 위축과 투자 부진이란 내수 수요가, 대외경쟁에서 밀려난 결과입니다. 당황한 아베 정권은 소비세 인상 정책의 중단을 즉각 선언했습니다. 2015년 12월로 예고됐던 2차 소비세 인상을 2017년 7월로 18개월 연기했습니다. 소비세 인상 정책을 실질적으로 포기한 셈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결단으로 중의원을 해체하고 조기 총선을 오는 12월에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 소비 지출이 급감할 개연성이 큰데도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던 이유가 있나요?
“지난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아베 정부가 얻은 교훈은 통화 및 재정 정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부 부채를 줄이겠다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선진국 중 제일 높은 수준입니다. GDP의 240%에 해당합니다.

이 정부 부채를 감소하는 방법은 경기 회복을 통한 세수 증가나 소득세나 소비세의 인상을 통해 재정 흑자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아베 정부는 법인세나 개인 소득세 등을 통한 세수 증가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치명적인 정책 오판이지요.”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독일… 중국 성장은 당분간 지속

– 이제 유로존 국가로 가 보겠습니다. 18개국을 포함한 유로존의 높은 실업률과 1%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기조는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아왔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최대 경제 국가이자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해온 독일마저 최근에 간신히 ‘공식적 침체’ 상황을 면했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독일은 지난 2분기에 성장률 -0.2%를 기록하고 3분기에 가까스로 0.1%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공식적 침체’라는 수모는 일단 피했습니다. 특기할 사실은 독일의 과도한 ‘긴축 정책’이 경기 부진을 야기한 요인이라는 점입니다. 유로존의 남쪽 국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의 긴축 정책 기조가 이들 국가들의 경기 회복을 늦추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에 미국의 다수 전문가들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메르켈의 과도한 긴축정책을 1930년대의 소위 ‘이웃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의 피해에 비유하면서 독일 ‘왕따’ 분위기마저 조성될지 모릅니다. 적어도 1~2년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최근 중국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번 금리 인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1월 18일, 1년 만기 대출 기준금리를 5.6%로 0.4%p, 1년 만기 예금 기준 금리는 2.7%로 0.25%p 인하한다고 기습 발표했습니다. 미국 신자유주의의 대변인격인 <월 스트리트 저널>이 며칠 전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을 보고 있다’라는 도전적인 기사를 실을 정도로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국의 <로이터>는 ‘중국 경제가 위기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반증한다’고도 평가했습니다.”

– 중국 경제의 기적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경기 둔화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 단계론에서 ‘따라잡기 단계(Catch-Up Phase)’가 만료돼 가는 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또한 중복 과잉 투자, GDP의 25%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붕괴 조짐, 열악한 금융시장의 투기성 과열, 심화되는 해외 시장의 경쟁 등의 요인이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내수 시장의 부진과 대외 여건의 악화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10% 성장률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래도 2015년까지 5~7%선의 잠재 성장률을 보일 개연성이 크다고 봅니다.”

– 러시아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오.
“러시아의 경기 침체가 심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구 국가가 단행하고 있는 경제 제재의 후유증이 예상 밖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시아 경제의 ‘젖줄’인 석유산업은 유가의 급격한 하락으로 심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러시아 재무장관은 미국과 유럽국가가 지난 4월부터 단행하기 시작한 경제 제재가 1년에 약 40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손해를 끼친다고 발표했습니다. 거기에다 최근의 유가 급락으로 인한 러시아의 석유 수출 수입의 1년 손실은 900억~100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

– 미국이 일종의 구세주 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경제 기사들이 눈에 띕니다.
“올해 1분기에 미국 성장률이 -2.9%로 나왔을 때 전문가들의 반응은 잠잠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2분기에 4.6%, 3분기에 3.9%의 높은 성장률이 알려지자 매우 놀라는 분위기였죠. 왜냐하면 이런 성장률은 2003년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성적이니까요. 이처럼 높은 성장률의 요인도 매우 건실합니다. 이 성장률의 70%가 소비와 투자에서, 25%가 수출 증가에서 왔다는 사실은 미국경제의 구조가 단단하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의 대외연구소 보고서는 내년 미국이 2.7%의 높은 성장률로 세계경제를 견인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기할 사항은 미국의 석유 산업부분의 괄목할 성장입니다. 만약 미국이 석유 수출국이 된다면 지난 40여 년간 ‘쌍둥이 적자 국가'(무역 적자+재정 적자)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며 오일 머니 사이클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최근에 크게 흔들린 미국 경제 위상이 다시 우뚝 설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 경제의 장래 역시 밝지 않다

– 한국 경제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갈수록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의 경제 상황 판단 오류나 미숙한 대응 정책도 문제가 크지만,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이 더 큰 문제입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높은 성장률을 성취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 잠재성장률은 노동의 증가율과 고정 자본의 증가율, 그리고 다른 모든 생산요소(기술 진보, 재벌 개혁 등)의 생산성 증가 등 세 가지 요인에 좌우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장래는 이 세 가지 요소에서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10년 안에 잠재성장률이 현재의 3.5% 선에서 2% 선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이번에 올 수도 있는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총괄적인 결론을 내주십시오.
“무엇보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난 4~5년간의 세계 경제 회복은 실물 경제의 기초 여건 강화나 체질 개선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 체질이 매우 허약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만약 경기 ‘침체’가 온다면, 2008년의 금융자산의 거품 붕괴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이번 경기 ‘침체’의 본질이랄까 특성은 무엇이 될까요? 지난번 같은 미국 금융가의 탐욕과 정부의 규제 철폐에 의한 후유증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번 경기 ‘침체’는 더 어렵고 장기적인 구조적 요인에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이번 침체는 일본, 독일, 영국 등 선진국 실물 경제(Real economy)의 초로(Aging) 현상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구의 고령화, 투자 기회의 고갈, 수출 시장의 경쟁 심화 등 구조적 난관이 첩첩이 싸여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를 견인해 온 중국 경제도 이제 따라잡기(Catch-up)형 성장 모델의 수혜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선진국 등의 구조적 경제 침체에서 미국 경제만은 다행히 빗겨나 있다고 보는 낙관론이 최근 갑자기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석유산업이, 쇠퇴하는 미국의 제조업을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